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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짓는 도시의 미래 – 에스토니아 4층 CLT 아파트에서 본 목구조의 가능성”


사진 1. CLT 아파트 전경 (사진 최재철)
사진 1. CLT 아파트 전경 (사진 최재철)

지난 2024년 9월, 필자는 유럽의 최첨단 매스팀버(Mass Timber) 제조공장과 여러 중대형 목조건축 현장을 둘러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번 목조건축 산업 투어를 통해 유럽 각국에서 중대형 목조건축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에스토니아 남동부의 소도시 폴바(Põlva)에 위치한, 지역 매스팀버 제조사가 공급한 4층 CLT(Cross-Laminated Timber) 구조 아파트였다. 소규모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고품질의 CLT 공동주택이 지역 건축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최근들어 필자에게 매스팀버 건축에 대한 기술 자문과 설계 컨설팅 요청이 부쩍 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도 중층 목조 공동주택을 비롯한 중대형 목조건축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유럽 목조건축 탐방에서 얻은 경험은 한국의 현실과 미래를 연결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 글을 통해 그 현장에서의 얻은 경험과 인사이트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사진 2. CLT 제조 공장 내부 (사진 최재철)
사진 2. CLT 제조 공장 내부 (사진 최재철)

이 프로젝트는 매스팀버 경험이 있는 설계자와 건설사의 시공으로 완공된 에스토니아 최초의 4층 CLT 공동주택으로 주거분야 매스팀버 건축의 발전 단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건물의 벽, 바닥, 지붕 골조는 모두 CLT 패널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장에서 정밀하게 제작된 패널이 현장에서 빠르게 조립되었다고 한다. 방문 당시 건물은 완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건설사의 시공 영상으로 CLT 패널 설치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현장에서 받은 첫인상은 ‘깔끔함과 단단함 그리고 따뜻함’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 규모의 공동주택이 목구조로 일상적으로 지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진 3. 계단실 및 엘리베이터실에 노출된 CLT 패널 (사진 최재철)
사진 3. 계단실 및 엘리베이터실에 노출된 CLT 패널 (사진 최재철)

제조업체의 설명에 따르면, 매스팀버의 재료적 특성 덕분에 시공의 정확도와 속도를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시범적으로 완성된 첫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개발사는 같은 장소에서 두 번째 CLT 아파트 공사가 이어질 예정이라고 했다. 그중 한 세대에 들어가 직접 거주 공간을 체험할 기회도 있었다. 이미 입주가 완료된상태 였지만, CLT 아파트의 실내 공간을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세대를 모델하우스로 사용한다고 했다. 실내에 들어서자 목재 특유의 질감과 은은한 향, 그리고 따뜻한 색감이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거주자의 입장에서 느껴지는 쾌적함과 시각적 안정감은, 목재가 단순한 구조재를 넘어 감성을 전달하는 재료임을 실감나게 했다.


사진 4 CLT 목조아파트 출입구 내부 (사진 최재철)
사진 4 CLT 목조아파트 출입구 내부 (사진 최재철)

특히 내화·방음·단열 등 기술적 성능 역시 유럽 기준을 충족하며 구조적으로 매우 안정적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엘리베이터가 완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중고층 목조건물에 대해 가장 많이하는 질문 중 하나가 “엘리베이터 설치가 가능한가?”인데, 이 현장은 그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었다. 이 경험은 “순수 목재만으로도 공동주택을 지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자, 매스팀버 건축의 잠재력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전에 필자는 여러 차례 캐나다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경량목구조 방식의 5층 규모의 아파트 현장을 경험했었다. 이 정도 규모의 아파트에서 두 공법의 구조적 강도 차이는 거의 없다. 다만 실내 공간에서는 경량목구조의 경우 골조 위에 석고보드를 설치하고 마감을 하지만, CLT 패널의 경우 구조체 자체를 노출시킬 수 있어 구조와 인테리어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사진 5. 벽은 CLT 노출, 천장은 CLT위 페인트 마감 (사진 최재철)
사진 5. 벽은 CLT 노출, 천장은 CLT위 페인트 마감 (사진 최재철)
사진 6. 벽 CLT는 벽지 마감, 천장 CLT는 노출 (사진 최재철)
사진 6. 벽 CLT는 벽지 마감, 천장 CLT는 노출 (사진 최재철)

설계자가 만드는 매스팀버 구조의 완성도

“The devil is in the detail”.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대형 매스팀버 기업 총괄경영사장(COO)과의 미팅에서 그가 반복해서 강조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매스팀버 건축의 품질은 공장 설비보다 설계자의 ‘디테일 설계 능력’에 달려 있다. 나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목재 패널의 조인트, 내화 상세, 배관 천공, 철물 접합, 하중 전달 경로 등은 모두 설계 단계에서 정밀하게 계획되어야 한다. 매스팀버 건축은 설계·제조·시공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번 CLT 아파트 현장에서도 설계팀과 제조사의 기술팀은 BIM 기반의 3D 모델을 통해 패널 배치, 개구부, 접합철물의 위치, 그리고 패널의 적재 순서까지 데이터화 했다. 매스팀버 제조사는 그 데이터를 그대로 기계에 입력해 생산을 진행한다. 즉, 설계가 곧 제조 공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진 7. 설계 데이터는 CNC 기계로 전송되고, 그에 맞게 CLT 패널이 제작된다 (사진 최재철)
사진 7. 설계 데이터는 CNC 기계로 전송되고, 그에 맞게 CLT 패널이 제작된다 (사진 최재철)

 

이처럼 설계자가 매스팀버의 구조 논리와 제조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설비를 갖추더라도 프로젝트의 완성도는 확보할 수 없다.


인구는 작지만, 산업은 크다

에스토니아의 인구는 2024년 기준 약 137만 명으로, 한국의 5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조건축의 보급률과 산업 생태계는 오히려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공공건축, 학교, 주거시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CLT·글루램(Glulam)을 적극 도입하고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 목재산업과 건축산업을 연계하여 육성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히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다. 에스토니아는 정책, 교육, 산업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규모 설계사무소조차 목조건축 설계를 기본 역량으로 보유하고, 제조사와 설계자가 초기 단계부터 협업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인구수와 기술 인프라가 에스토니아보다 훨씬 크지만, 목조건축은 여전히 일부 실험적 영역에 머물러 있다. 결국, 목조건축 산업의 활성화는 시장 규모보다 산업 간 협업 구조와 인식의 깊이, 실무를 이해하는 전문인력에 달려 있음을 에스토니아가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 목조건축의 현실과 과제

국내에서도 매스팀버를 활용한 중대형 목조건축물은 꾸준히 지어지고 있다. 공공시설, 소규모 오피스, 클럽하우스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기에는 여전히 인적 기반이 부족하다. 목조건축이 지금보다 훨씬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설계, 구조, 시공, 감리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이 가장 시급하다. 목구조를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제조 데이터를 설계 도면으로 변환하고 공장 생산과 연결할 수 있는 실무형 전문가가 필요하다. 또한 지자체·공공기관·도시공사 등 발주처 역시 목조건축의 기술적 특성을 반영한 제도적 기준과 프로세스를 정비해야 한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지속가능한 목재 사용을 촉진하고 목조건축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협회-BM TRADA의 Milestone 전 회장과의 대화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지금의 한국은 20여년 전 영국의 목조건축 산업 초기와 닮아 있다”고 말했다. 그 당시 영국의 목조건축 산업은 기존 콘크리트나 철골 업계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정확한 데이터와 전문인력 기반의 교육 체계를 통해 돌파구를 열었다. 그 결과, 오늘날 영국은 세계 목조건축 시장의 중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필자 역시 20여년 전, 6년 동안 영국에 머물면서 목조건축 산업 관련 학업과 실무를 경험했다. 이로 인해 영국 목조건축 산업의 성장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전문인력이 늘어나면 품질이 높아지고, 품질이 높아지면 소비자의 인식이 ‘의심’에서 ‘신뢰’로 바뀐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어야 산업은 성장할 수 있다.

사진 6. 필자가 모듈러 설계와 PM을 맡았던 런던의 5층 경량목구조 공동주택, 2006년
사진 6. 필자가 모듈러 설계와 PM을 맡았던 런던의 5층 경량목구조 공동주택, 2006년

한국에 주는 시사점

에스토니아의 4층 CLT 아파트는 한국의 도시형 공동주택 시장에 현실적인 메세지를 던진다. CLT를 포함한 목구조는 공사기간 단축, 품질 관리, 환경 가치 측면에서 모두 경쟁력이 높다. 또한 목재의 탄소저장 효과를 통해 ESG 경영과 탄소중립정책에도 부합한다. 중층 목조 공동주택, 기숙사, 공공 임대주택 등 현실적인 규모의 프로젝트부터 목구조를 적극 도입한다면, 국내 건축산업의 지속가능한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나무가 짓는 도시 목조화의 시대

유럽 선진 목조건축 탐방을 통해 다시금 확신하게 된 점은 분명하다. 목재는 단순한 건축 자재가 아니라, 건축의 언어 자체를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의 건축산업은 이 변화를 중심으로 빠르게 ‘도시 목조화’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제도적 기반과 교육 시스템이 뒷받침된다면, 나무는 충분히 도시를 지탱하는 주요 구조체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제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기술을 넘어, 사람과 환경, 산업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로서의 목조건축을 바라봐야 한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목조건축 전문가로서, 필자는 앞으로도 해외의 선진 목조건축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설계·구조·시공 생태계와 교육 현장을 연결하고자 한다. 나무로 짓는 건물이 곧 사람과 지구를 위한 구조가 되는 시대, 그 변화를 이끌어가는 현장에서 우리 모두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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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최재철 대표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목조건축 전문가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설계 실무를 거친 후, 영국 De Montfort대학교에서 ‘인테리어 디자인’, Edinburgh Napier대학교에서 ‘목조건축산업경영학(Timber Industry Management)’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글로벌 지식을 확보했다. 특히 2004년 부터 영국의 대형 목조 모듈러(OSC) 회사 팀장으로 다양한 목조건축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현장과 기술을 겸비한 글로벌 전문성을 완성했다. 이후 캐나다우드 한국사무소 기술이사, 인하대·단국대 건축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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